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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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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행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는 1917년 11월 19일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다.

대신학교에 들어서면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요한 14,23)라고 하신 말씀에서 영성 생활의 실마리를 풀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양심적으로 신학교 규칙을 지키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하느님 때문에 뜻 있게 보내려고 애썼다.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요한 13,23; 21,20) 성심을 상해 드리는 동료의 실수를 배상하고 위로해 드리는 길을 걷고자 매주 목요일 저녁에 성시간을 바쳤다.

1939년 6월, 삭발례를 받은 후 일본 여행 중 북해도에 있는 트라피스트 남녀 수도회를 참관하고 침묵과 고행생활을 선망하게 되었고, 센다이에 있는 소신학교의 도미니코수도회 소속 교장 신부님을 통해 천주성삼 신심을 알고 공경하기 시작했다.

1942년 5월 30일 삼위일체 대축일 바로 전날인 토요일, 대구 교구에서 뭇쎄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으며 사제 생활을 천주성삼께 조건 없이 봉헌하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1950년 대구교구장 최덕홍 요한 주교님의 허락으로 상주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여 차츰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미리내성요셉애덕수녀회, 제3회를 설립하였다.

성지개발에도 관심을 가져 1976년 수원교구 미리내성지, 1985년에는 기록에만 남아있던 조선의 성모성심 신심 발상지인 대전교구 수리치골성지를 찾아 개발하였다.

2004년 6월 6일 삼위일체대축일에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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